국내 연구윤리 규정의 문제와 개선 과제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16-10-07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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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윤리 규정의 문제와 개선 과제

   

                                                                                        박기범 -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연구윤리정보센터 행정분과 위원

   

   

2005년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은 국내에서 연구윤리의 중요성을 일깨운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국내에서 연구의 진실성 문제는 학계의 자율적 영역으로 간주되었으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처리과정을 통해 연구윤리 확립과 진실성 검증에 대한 제도적 기반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정부는 1년여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2007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과학기술부 훈령으로 제정하였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연구윤리 정책의 모체가 되고 있다.

   

이 지침은 직접적으로는 국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의해 수행되는 연구에 한정된다. 그러나 부가적으로 대학 등 연구기관이 국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연구 진실성 검증에 관한 기관 차원의 자체 규정을 둘 것을 의무화하였고 이에 따라 2010년까지 국내 4년제 대학의 80% 이상이 자체 규정을 마련한 상태이다. 이들 자체 규정은 대학교수와 학생 등 소속 연구자의 연구 활동 전반에 적용되며 연구비 재원에 따라 적용 대상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결국 정부의 지침에서 제시한 연구 진실성 검증의 원칙과 절차는 우리나라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에서 수행되는 모든 연구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법령 체계상으로도 학술진흥법과 그 시행령에 연구윤리 확보를 명시함으로써(2011) 연구윤리의 제도적 기반은 과학기술분야 국가연구개발사업 뿐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와 학위논문 등 학술활동 전반에 걸쳐 확립되었다.

   

연구윤리의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제기된 이후 법제도적 기반이 갖추어지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걸린 미국과 비교하여 보면 우리나라의 연구윤리 제도적 기반은 매우 빠른 시간 내에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타인의 연구에 대한 검증의 경험이 없고 연구문화와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 변화, 그리고 연구윤리 교육의 경험이 일천한 상태에서 제도적 기반이 먼저 마련됨에 따라 겪는 부작용과 시행착오도 적지 않다. 여전히 고위 공직자 임용 과정에서 빠지지 않고 불거져 나오는 과거 연구에서의 부적절한 행위는 그 한 예라고 할 것이다. 연구 진실성 검증 체계의 정착 과정에서 여러 혼란이 발생하고 있으나 특히 이 글에서는 국내 연구윤리 규정의 문제점과 개선 과제에 대하여 짚어보고자 한다.



 연구자의 소속에 따른 검증주체

 

정부의 지침을 포함한 거의 모든 연구윤리 규정에서는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검증은 해당 연구가 수행될 당시의 연구기관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연구윤리에 관한 선진국들의 규정에서도 공통적이다. 국가 또는 외부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은 기관이 해당 연구에서의 진실성을 책임지는 것이 당연할 뿐더러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조사가 기관의 외부 소속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감안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가 된 연구행위의 수행 이후 소속 기관을 옮겼을 경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과거의 소속 기관이 검증의 주체가 되어야 하나 피조사자가 현재 그 기관에 소속되어 있지 않을 경우에는 출석과 자료 제출을 강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2013년 여러 언론을 통해 지방 A 치과대학 연구진이 수년간 연구한 성과가 서울의 유명 B 대학의 연구진이 발표한 논문에 무단으로 사용되었음이 보도된 바 있다. 이에 A 대학의 연구진실성위원회는 6편의 논문에 대해 표절과 절취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경우, 비록 A 대학의 연구진이 어렵게 연구한 성과가 무단으로 도용되었다 하더라도 연구부정행위 여부에 대한 최종 판단은 A 대학이 아닌 B 대학이 내려야 한다. 연구부정행위여부의 판단을 위해서는 문제가 된 논문의 저자들에 대해 의견 진술과 소명의 기회 부여가 필수적인데 A 대학은 이를 수행할 수 없으며 A 대학 소속이 아닌 연구자에 대한 검증의 권한도 없기 때문이다.

   

학회(학술지)의 역할과 연구진실성 판단

 

유사한 사례를 학술지에서의 연구부정행위 검증 과정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이후 대학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 학회와 학술지들도 학회 차원의 연구윤리 규정과 진실성 검증 체계를 구축한 바 있다. 투고된 논문에서 표절 또는 중복 게재 의심 사례가 발생할 경우 학술지는 정해진 절차를 걸쳐 연구의 진실성을 검증한다. 그런데 그 결과로 논문의 표절 또는 중복 게재 여부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나 연구부정행위 여부에 대한 판단은 학회, 학술지가 아니라 논문 저자의 소속 연구기관이 내리는 것이 타당하다. 즉 학회나 학술지에서는 투고된 연구 성과물의 질을 평가할 수 있을 뿐이지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흔히 위조, 변조, 표절 등을 연구부정행위의 유형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연구의 최종 결과물인 논문의 부적절함(위조, 변조, 표절)과 그 성과를 만들어 낸 행위(behavior 혹은 conduct)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학술지의 입장에서 연구성과물의 적절함을 판단하는 기존의 편집위원회가 있음을 감안하면 연구부정행위에 관한 별도의 연구윤리위원회는 그 역할의 구분도 어렵고 중복으로 존재할 이유도 크게 없다고 할 것이다. 학술지의 편집위원회는 연구 성과물의 질을 기준으로 게재 가능/불가능 여부를 판단하고,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의혹이 있을 경우에는 이를 해당 연구자의 소속 기관으로 통보하여 진실성 검증을 의뢰하는 것이 타당한 절차이다. 만일 연구윤리위원회가 별도로 존재한다면 이러한 통보와 검증 의뢰, 그리고 향후 연구기관의 검증 결과에 대한 학회 차원의 후속 조치 결정에서 차별화된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며 기존의 편집위원회가 이를 담당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연구지원기관과 연구기관 간의 상충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연구지원기관과 연구기관간의 역할 문제이다. 정부의 연구윤리 지침 제정 이후 연구기관 뿐 아니라 연구지원기관도 자체 규정을 마련할 것이 요구되었다. 이후의 사례를 살펴보아도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최종 심사과정에서 발견된 연구부정행위가 적지 않다. 심사 과정에서 보고서의 표절, 중복, 또는 위조가 발견될 경우 대부분의 연구지원기관들은 자체적으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이를 해당 연구자의 소속 기관으로 통보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것은 연구 진실성 검증의 책임이 연구기관에 있다는 정부 지침의 원칙에 위배되는 절차이다. 지침의 원칙에 의하면 연구지원기관들은 제출된 보고서가 당초 연구 계획을 충실히 반영하였는지, 위조나 표절 등의 문제가 없는지, 있다면 그 심각성 정도를 판단할 수 있을 뿐이며 문제가 있을 경우 과제의 합격/불합격 여부를 결정할 수는 있으나 연구부정행위 여부는 연구기관이 판단하여야 한다. 연구 진실성 검증 과정에서 조사위원회의 역할은 단순히 연구부정행위가 맞다 아니다를 넘어 해당 행위가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어떤 목적으로 얼마나 반복적으로, 실수인지 고의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며 이는 해당 연구자의 소속 기관이 아닌 외부 기관에서는 원활하게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의의와 중요성을 고려할 때 연구기관이 아닌 연구지원기관이 직접 조사를 수행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할 수는 있겠으나 이는 더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문제는 대부분의 연구지원기관들이 2007년 이후 자체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연구기관에게 적합하도록 제시된 권고안을 수정 없이 그냥 연구지원기관의 규정으로 제정한 것에서 비롯된다. 대부분 연구지원기관 자체 규정에 담겨있는 예비조사, 본조사, 판정 등의 규정은 연구지원기관에서는 불필요한 규정들이다. 이보다는 부정행위 의혹에 대해 연구기관으로의 통보, 연구기관의 연구진실성 검증 결과에 대한 검토와 후속 조치에 대한 내용이 연구지원기관의 규정에 반드시 필요하나 이러한 규정을 갖춘 연구지원기관은 드물다. 일부 연구지원기관은 실제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야 자체 규정에 문제가 있음을 발견하고 개정에 착수한 바 있으나 대부분 연구지원기관은 여전히 연구기관에 적합한 규정을 토대로 조사위원회 활동과 판정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피조사자가 수긍하지 않을 경우에 연구기관과 연구지원기관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현재 진실성 검증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으며 향후 갈등의 소지가 다분하다.

 

이러한 사례 뿐 아니라 정부의 규정, 연구지원기관의 규정, 연구기관의 규정, 각 연구개발사업의 규정, 그리고 학회나 학술지의 규정과 가이드라인 등 연구윤리에 대한 다양한 규정들이 실제 상황에서 서로 상충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개선 과제(시사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연구지원기관 규정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이며, 현재 학술진흥의 목적과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국가연구개발사업에 관한 미래부 부령과 차별없이 존재하는 교육부 훈령도 시급히 개정되어야 한다. 또한 학회와 학술지도 연구의 진실성 검증과 연구부정행위 판단의 차이점을 인지하고 연구윤리에 관해 연구기관 및 연구지원기관과의 연계 방안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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