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규범과 연구윤리
작성자 : 관리자 등록일시 : 2016-11-1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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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라는 과거에 분명히 동방예의지국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예(禮)는 임금과 사대부(양반)에 국한되는 행동방식이었다. 구한말 서구식 교육제도가 도입될 때에는 교육체제의 외형과 지식내용은 서구적이었으나 정신적 부분(사회를 지배하는 사고체계)은 여전히 유교적 전통이 자리 잡게 되었다. 즉, 스승과 제자가 유교적 관계에서 공부하다가, 서구적 학습에서 알게 된 자유평등사상을 학교생활에 어떻게 적용할지 몰랐다. 그리고 이러한 개념을 정리할 겨를도 없이, 우리 대학은 6.25를 겪었고, 사회혼란과 민주화 투쟁의 진원지로서 수십년을 보냈다. 이제 정치 안정과 더불어 대학은 정상위치로 돌아왔지만, 우리 대학이 학문에 몰입하기 시작한 역사는 20년이 안된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 우리대학은 선진국에서 공부한 교수들로 채워지는 경향을 보였으나, 학술규범은 여전히 유교적 권위주의에 바탕을 두게 되었다. 그 결과 테뉴어tenure는 너무 쉽게 통과되고, 안식년제도는 미국처럼 운영하되 이익의 충돌은 미국처럼 관리하지 않아, 대학연구의 효율성과 신뢰성이 높지 못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갈수록 대학의 사회적 역할이 중요해지고, 대학에 투자되는 연구비 규모가 많아지고 있으므로, 이제 학술규범과 연구윤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제대로 된 체제를 갖추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동안 정부의 요구에 따라 산업기술개발에 매진해온 정부출연연구기관도 마찬가지다. 모방의 시대는 WTO의 출범과 함께 종료되었다. 창의적이고 기초적 연구를 수행하려면 윤리적 기반을 갖추지 않고서는 한계에 봉착될 것이다. 즉, 시켜서 하는 연구가 아니라 스스로 주제를 찾아 연구하려 한다면 자율성을 얻어야 하며, 이에 부응하는 책무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자원을 배분하는 원칙과 연구협력도 윤리적이어야 한다. 기술의 공개와 공동연구가 open innovation의 핵심인데 이것도 윤리적 바탕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본 원고에서는 미국의 연구윤리체계를 소개하려 한다. 그 이유는 그것이 곧 글로벌 스탠다드이고, 우리 학술활동의 많은 부분이 미국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제도적 단면적 모습보다는 역사적 인과관계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 배경을 이해하여야 그 참된 의미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역사와 학문의 자유

학술규범은 학문의 태동과 함께 발생하였다. 스승과 제자의 사랑, 지식에 대한 애착, 진리에 대한 엄격함, 발언에 대한 책임 등이 소크라테스, 프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잇는 과정에서 많이 정리되어 학술규범으로 나타난다. 공자는 이들보다 1세기 앞서 제자를 두고 체계적 교육을 실시하였으나 세계사에서는 프라톤을 더 중요시한다. 중세 때 까지 귀족교육과 승려교육으로 한계를 가지던 고등교육이 대중화되는 계기는 이탈리아의 상인들에 의해 시작되었다고 보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당시 많은 부를 축적한 이태리 상인들이 로마법과 기독교를 공부하겠다고 저명한 교수를 초빙한 것이 Bologna 대학의 설립(1088년) 배경이며 이것을 고등교육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각지에서 모여든 학생과 Bologna 지역 주민과의 마찰이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하나는 학생과 교수를 보호해 달라는 청원과 함께 얻어낸 “대학의 특권”이며, 다른 하나는 많은 교수들이 Bologna를 떠나 다른 도시에 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Paris 대학, Oxford 대학이 이렇게 해서 설립되며, 대학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중세 유럽의 대학들은 교권과 왕권의 대립 속에서 무게있는 지식집단의 역할을 하며 대학의 특권과 자율권을 얻어 내었다. 이 당시 대학의 특권이란 징집면제, 여행의 자유, 세금면제 등이었으며 학생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시민법정보다는 교회법정에 서도록 한 것이다. 오늘날 징집연기, 학생사법재판소(미국 대학에 존재)의 역사가 여기서 나온다. 19세기에 와서 독일의 대학에는 연구기능이 부여되었다. 나폴레옹에게 패한 독일은 조국의 재건을 위해 Berlin 대학을 설립(1811년)하면서 연구기능과 연구의 자유를 부여하게 된다. 흄볼트의 철학에 따라 대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없앤 것이다. 그 결과 독일은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이 힘을 받는다. 그는 오스트리아와 프랑스를 이기고 독일제국을 이룩하는 결과를 얻는다.

 

19세기 말까지 농업 후진국이었던, 미국은 Harvard 대학을 일찍 설립(1636년)하였으나 목회자 양성에 초점을 두었다. 그 후 많은 독지가가 대학을 설립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미국이 사립대학 중심으로 가는 이유가 된다. 링컨 대통령 때 국유지를 각 주에 출연하여 주립대학을 설립하게 하였다. 그래서 land-grant 대학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1800년대 미국은 유럽 유학을 선호하였으며, 특히 연구를 중요시하는 독일 대학이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독일 유학파들이 귀국하여 만든 연구중심대학이 Jones Hopkins 대학(1876년)이다. Harvard 대학은 1911년 Harvard선언을 하고 대학원과정을 설치하게 된다.

 

유럽의 대학은 국가마다 학제가 다르게 발전해 가다가 1970년대에 미국식으로 통일하게 된다. 프랑스, 독일의 대학은 대부분 국공립이므로 교수신분은 안정적이다. 그러나 교수는 40세 전후에 habilitation을 통과하여야 정교수 자격과 박사과정 지도자격을 얻을 수 있다. habilitation은 연구자로서 홀로서기(독자적 연구영역의 개척)를 심사하는 제도로서 배심원 앞에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심사과정이다. 이에 반해, 미국의 대학은 대부분이 사립대학이므로 tenure 제도가 설치되었다. 교수 임용 후 7년 이내에 tenure 심사를 통과해야 정년고용이 보장되는 제도인데, 알고 보면 tenure는 교수의 직업안정을 지키기 위해 교수단체에서 설치한 제도이다.

 

1900년대 초까지 미국의 사립대학은 종교(기독교)적 금기가 많았으며, 흑백문제, 이념문제로 교수활동에 대한 검열이 많았다. 그리고 교수해고도 쉽게 일어났으므로, 이에 반발한 교수단체(AAUP)는 수차례에 거쳐 「Statement of Principles on Academic Freedom and Tenure」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그 내용은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서 교수가 지켜야할 자세를 천명하고 교수의 직업안정을 위한 tenure제도 운영의 방법을 선언한 것이다. 그리고 교수윤리, 교수해고절차, 학생선언, 대학원생 선언 등 많은 선언문을 발표한다. 이것이 미국의 대학규범이 형성된 과정이며, 학술규범의 한 축이 이루어진 과정이다.

 

  전체적 흐름을 정리하자면, 근대적 개념의 대학은 중세유럽에서 발생하였다. 대학은 교권과 왕권 다툼의 혼란한 사회 속에서 학생과 교수를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특권(병력, 조세, 재판 등)을 얻어내었다. 그리고 대학에 학문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학술발전에 유리하며, 학술발전은 국가발전에도 중요하다는 사상이 독일에서 시작되어 전 유럽 및 미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와 병행하여, 인권개념의 성장, 시민혁명, 민주주의의 태동이라는 역사적 흐름과 함께 “학문의 자유” 개념은 자유·평등과 대등한 기본권 차원으로 인식되고 많은 국가의 헌법이나 법률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교수들은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는 선봉장이 되면서 많은 윤리선언을 하였다. 선언이 많다는 것은 밑으로부터의 변화(bottom-up식 변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자들은 학문의 자유를 학습의 자유, 강학의 자유, 연구의 자유, 대학의 자치를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학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는 자세로 사회규범보다 더 엄격하게 대학의 규범은 제정하고 운영하였다. 미국에서 대학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높고, 기부가 많으며, 대학의 자율적 결정이 존중받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윤리

생명윤리의 내용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실험동물 복지 및 인간배아연구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원전 히포크라테스가 만든 의료인의 직업윤리 선서가 있었지만, 인간을 연구대상으로 할 때 적용하는 윤리원칙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Nazi의 의사들의 생체실험을 심판한 Nuremberg 재판 과정에서 제정된 윤리원칙이 시초였다. 「The Nuremberg Code」라고 부르는 이 규정은 인간을 대상으로 시험을 실시할 때 준수해야할 원칙으로, ①피험자의 자발적 동의(voluntary consent)를 받을 것, ②사회에 유익한 시험이어야 할 것, ③자격을 갖춘 전문가가 수행할 것, ④피험자는 실험을 중단할 자유를 가질 것 등 10개 조문을 제시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선진국에서는 경쟁적으로 연구기관을 설치하고 연구비투자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약 및 생물학 분야에서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원칙 없이 수행되고 있었다. 면역체계의 연구, 방사능 연구, 암연구 등에서 가난한 사람, 무지한 사람, 죄수 들이 연구 대상으로 활용되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연구하는 의사들에게 윤리원칙을 제정해 줄 필요성이 WTO를 중심으로 인식되었으며, 세계의사협회에서는 1963년 Helsinki 총회에서 윤리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세계의사협회 헬싱키 선언문(World Medical Association Declaration of Helsinki)」이라고 부르는 이 선언문에서는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의사가 지켜야할 윤리원칙으로 22개 조문을 제시한 것이다. 그 핵심 내용으로 ①실험계획서(experimental protocol)는 독립적 위원회(independent committee)의 검토를 받을 것 ②연구는 이익과 위험을 비교하여야 하며 이익이 더 클 것, ③의사는 연구목적, 방법, 기대되는 이익, 잠재적 위험을 피험자에게 알려주고 언제든지 참여를 회피할 수 있는 권리를 알려준 후, 동의서(informed consent)를 받을 것, ④미성년자, 장애자 등 취약계층은 법적 대리인의 동의를 받을 것, ⑤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는 참여하는 피험자의 안녕보다 학문적, 사회적 이익을 더 중요시 할 수 없음 등 이다. 그 후, 이 선언문은 개정을 거듭하여 최신 버전에서는 적용대상을 의사에서 일반 연구자로 확대되고 조문도 35개로 추가되었다.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에서는 모두 이 원칙을 토대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윤리기준을 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란 임상연구를 가장 큰 범주로 생각하고 있지만, 임상이 아닌 연구로서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 예로는 조직이나 혈액과 같은 인간유래시료를 사용하는 경우, 임상 이전에 연구실 단위에서 인간에게 적용해보는 생체재료 및 의료장비 연구, 인간 심리나 욕구에 관한 연구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은 좀 더 엄격한 윤리규범을 채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을 경악하게 하는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PHS(공중보건원)에서는 1932년부터 약 40년간 알라바마주 터스키기(Tuskegee)에 있는 약 400명의 문맹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연구를 수행한 것이 1972년에 폭로된 것이다. ‘터스키기 매독 연구(Tuskegee Syphilis Study)’라고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의회 청문회가 개최되고 특단의 조치가 가해졌다. 즉, ①HEW2)가 피험자 보호를 위한 자신의 정책을 연방규정화 하도록 하는「국가연구법(National Research Act)」을 제정(1974년)하고, ②「피험자 보호를 위한 국가위원회3)」의 구성하였으며, ③HEW에 의해 수행되거나 지원되는, 살아있는 인간 태아를 포함하는 연구는 국가위원회가 조사하여 승인하기까지 일시적 중단하도록 조치하였다. 1974~1978년간 운영된 이 국가위원회는 기존의 HEW 체제를 평가하고, 개선책을 HEW 장관에게 권고했다. 그리고 이 위원회는 1979년「벨몬트 보고서(The Belmont Report : 인간 피험자 보호를 위한 윤리원칙과 지침)」를 발행하였다.

 

이 「벨몬트 보고서」는 피험자를 보호하는 세 가지 기본 윤리원칙을 천명 하였으며,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를 수행할 때 이 윤리원칙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의 세 가지 원칙은 ①인간존중의 원칙, ②선행의 원칙, ③정의의 원칙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윤리적 의사결정을 하는 데 필요한 개념적 토대가 되었다. 미국 연방정부는 의회에서 제정된 「국가연구법」과 「벨몬트 보고서」의 원칙을 이행하기 위하여 1981년「45 CFR 46」이라고 불리는 연방규정을 제정하여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범위, IRB의 구성과 운영, 고지된 동의의 요건 등을 명확히 규정하여 오늘까지 오고 있다.

 

인간배아연구는 인간유래시료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윤리문제를 제기한다. 1978년 최초의 시험관 아기의 탄생으로부터 촉발된 인간배아연구에 관한 윤리문제는 1997년 복제양 Dolly가 탄생하면서 미국은 아주 엄격한 자세를 보였다. 이에 관련된 윤리적 이슈를 보면, ①배아를 어느 시점부터 인간으로 보느냐? ②배아의 획득방법은 인간의 존엄성 보호를 위해 어떤 방법이 좋은가? ③체세포 핵이식은 인간복제와 직결되므로 엄정한 관리방법은 무엇인가? ④인간과 동물의 혼합문제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⑤배아연구에서 상업주의를 어떻게 통제하느냐? 이다. 미국은 오랫동안 정부투자를 억제하다가 2009년 3월 Obama가 대통령령을 발동하여 인간 배아연구를 허용하게 된다.

 

인간 배아연구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의 윤리체계와 유사하게 IRB를 통해 감독되도록 하면서, 배아를 전담생산하고 분양하는 전문기관(Stem Cell Bank)을 특별히 설치하여 전문성과 윤리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다.

 

실험동물복지 문제는 동물애호가들의 노력으로 입법화되고 제도화되었다. 동물실험은 동물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시행되는 경우(주로 축산학 연구)도 있지만 대부분 인간의 건강을 위해 시행(주로 생의학 연구)되고 있으므로 연구자가 스스로 지키는 윤리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동물복지와 윤리문제를 연구자 개인에게 맡기지 않고, 기관차원에서 신뢰와 명예를 걸고 관리․감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연구공동체가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에 대해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다면, 학문적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므로, 실험동물 문제도 중요한 이슈이다.

동물실험의 윤리원칙은 ①3R 원칙의 준수, ②동물관리의 원칙 준수, ③직원교육의 실시, ④내부 심사기구로서 IACUC의 설치․운영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3R 원칙이란 Replacement(대체 : 동물대신 최대한 다른 방법 모색), Refinement(순화 : 고통과 괴로움을 최소화), Reduction(축소 : 최소한의 동물을 사용)이며 실험동물 윤리원칙의 핵심적 개념이다.

 

연구부정행위와 데이터 관리

선진국의 연구윤리체계는 대형 부정사건을 겪으면서 제도가 더욱 세밀화 되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연구비 투자가 급증하기 시작 한 이후, 의회에서는 예산의 효율성을 따지게 되자 연구자에게는 스트레스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1970년도 중반부터 1974년 William Summerlin 사건, 1978년 Vijay R. Soman 사건, 1981년 John R. Darsee 사건 등 10여건의 대형 연구부정사건이 발생하자 의회는 연방기구(Agency)나 연구기관(institution)들에게 정책(policy)을 수립토록 요구하였으며, 이 ‘정책’은 3가지 요소가 포함되도록 하였다. ①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정의, ②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보고․판결에 관한 절차의 주요 골격, ③부정행위에 대한 제보자와 피고발자 모두에 대한 보호조치

 

미국의회는 1985년 「Health Research Extension Act」를 제정하였고, 이를 시행하기 위해 정부는 1989년 보건복지성에 과학윤리국(OSI)과 과학윤리심의국(OSIR)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1992년 이 2개의 국을 ‘연구윤리국(ORI)’으로 통합하게 된다. NIH는 1986년「NIH Guide for Grants and Contracts」발행하고, NIH연구비를 받는 연구기관은 연구부정행위를 보고하도록 규정화하였다. OSTP는 모든 연방기구들이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수립하도록 하기 위해 10년 이상의 논의를 거쳐, 2000년 12월 「Federal Policy on Research Misconduct」를 채택했다. 그리고 미국 보건복지성(HHS)은 2005년 5월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처리를 위해「42 CFR 93」을 제정하였으며 공중보건원(PHS)에서 관장하도록 하였다.

 

미국의 규정에서 연구부정행위(Research Misconduct)란 연구를 신청․수행․심사함에 있어서 또는 연구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에 일어나는 위조(fabrication)․변조(falsification)․표절(plagiarism)로 정의한다. 그리고 연구부정행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다음의 조건이 만족되어야 한다. ①관련되는 연구공동체에서 통용되는 관행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는 행위, ②고의적으로 또는 알고 있으면서 또는 부주의해서 행해지는 부정행위, ③증거의 우월성에 의해 입증된 제소

 

연구부정행위가 제소(allegation)되면, 먼저 예비조사(inquiry)를 실시하고, 본조사(investigation) 실시, 판정 및 항소의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여 피의자의 인권을 최대한 보호하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제보자의 비밀보호, 보복으로부터의 보호를 규정에 명시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연구부정에 대한 의심을 받게 되면, 이것을 적극적으로 해명할 책임은 연구자(피제보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부정행위의 의혹을 받은 연구의 관련기록이 회손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 피조사자가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 이것은 연구부정행위의 증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2월 「연구윤리확보를 위한 지침」을 제정하였으며, 2009년 9월 개정한 바 있는데, 우리는 연구부정행위에 부당한 논문저자 표시, 조사 방해, 제보자에 대한 위해행위를 추가하고 있다.

 

따라서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연구데이터의 기록과 보관이 아주 중요하다. 각 연구실 마다 연구자는 연구실의 지침에 따라 연구노트를 작성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연구데이터에 관한 윤리로는 ①연구기관 소유의 원칙, ②공개의 원칙, ③연구자 책임의 원칙이 있다. 연구자가 이직을 할 때, 연구데이터의 사본은 가져 갈 수 있지만 원본을 연구기관에 남겨야 한다. 그리고 논문으로 발표된 연구내용에 대해 독자가 설명을 요구하거나 시료를 요청하는 경우 실비만 받고 제공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때에는 물질이전계약서(Material Transfer Agreement)를 체결하여 특허권보호와 제3자 이전 금지를 약속받아야 한다. 근본적으로 기술은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특허제도는 알고 보면 기술을 공개하도록 하기 위하여 20년간 독점권을 인정하는 제도이다. 우리나라 고려 청자기술이 단절된 이유가 바로 기술의 공개를 꺼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면 기술의 공개가 과학기술 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것이다.

 

연구자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라고 하여, 자기 재량으로 다른 회사에 넘겨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회사의 지식재산을 도둑질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퇴직 후에도 비밀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기업의 기술보안체계가 원만히 작동되도록 하기 위하여 국가의 법률체계가 마련되어 있다.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과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그것이며, 모두 지식경제부에서 관장한다. 이 부분에서 잘 모르고 실수하는 과학기술자가 없어야 할 것이다.

 

이익의 충돌의 관리

마지막으로 중요한 부분은 이익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에 대한 관리이다. 연구자(교수를 포함)는 시간의 사용, 지식의 사용에 자율적 재량이 많으므로 다른 회사의 자문을 맡거나 외부기관을 위해 일 할 수 있다. 이 때 자신이 소속된 기관의 이익과 자신이 도와주는 기관의 사이에 이익의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이익의 충돌이란 이렇게 자신의 직무와 자기 개인의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익의 충돌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충돌 자체가 비윤리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이익의 충돌로 인해 판단에 편견이 개입된다면 비윤리적인 것이다. 그래서 제3자가 볼 때, 이익의 충돌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는 상황은 피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다. 즉, 개인적 이익을 위해 직분의 power를 사용한다면 비윤리적인 것이다. 그리고 친분관계가 있는 사안은 회피하는 것이 윤리적인 것이다. 이익의 충돌에는 4가지 종류가 있다. 재정적 이익의 충돌, 직무적 이익의 충돌, 인적 충돌, 지적 충돌이 그것이다.

 

재정적 이익의 충돌이란, 예를 들면, 자신이 소속된 연구소에서 연구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여러 업체의 장비를 심사․평가하는 회의에서 자신이 자문하는 기업의 장비가 피평가 대상으로 출품된 경우이다. 이런 경우 연구자는 그 심사를 미리 회피해야 한다. 주로 물품구매, 재정지원, 라이센싱 계약, 연구비 지원(연구결과를 sponsor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음), 창업 등에서 재정적 이익의 충돌이 일어 날 수 있다. 미국에서는 모든 연구자와 그의 직계가족에 대한 수입과 외부활동을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자문료, 특강료, 기부금 수령, 사외이사, 외부기관 겸직 등을 신고하는 서류양식이 정해져 있다.

 

특히, 임상연구를 담당하는 의과대학 교수에 대해서는 제약회사들이 미리 친분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신약개발에서 후보물질이 임상과정에서 탈락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있는 약물이 임상시험을 통과한다고 가정해 보자. 사회에 얼마나 큰 문제가 생기겠는가! 기업은 임상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여러 가지 편의를 연구자에게 제공하더라도 연구자는 그것을 받지 않아야 하고, 받았으면 신고해야 하며, 그 기업과 관련되는 연구․심사․평가에는 스스로 회피해야 한다.

 

직무적 충돌은 교수의 겸직에서 많이 나타난다. 교수가 수업시간은 준수하더라도 정치가의 참모로 일하거나 기업의 임원으로 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교수에게서 직무의 우선적 충성을 대학에 바칠 것을 요구하며, 임용계약에서 명시하고 있다(우리나라 대학의 임용계약서에는 이 내용이 없는 경우가 많다). 대학교수가 외부기관을 기술적으로 도와주는 것은 교수의 사회적 책무로 보는 견해도 있으므로, 보통 1주일에 하루의 외부활동을 허락하는 것으로 기준이 통용되고 있다.

 

인적 충돌은 연구자가 심사나 평가를 할 때 특정 집단(친척, 동문, 동향 등 인맥)을 유리하게 하거나 불리하게 하는 편견을 가진 경우를 말한다. 지적 충돌은 서로 반대 하는 학설을 주장하는 연구자 사이에 심사나 평가에서 편견이 작용하는 경우를 말한다.

 

이익의 충돌 관계는 당사자가 밝히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렵다. 기준 시점에 이미 이익이 충돌되는 경우도 있지만, 미래에 충돌될 것으로 예상되는 이익(잠재적 충돌이라고 한다)도 있다. 특히, 지적 충돌과 인적 충돌은 신고방법도 어렵고 신고범위도 애매하다. 여기에 적용되는 윤리기준은 “회피”이다. 즉, 충돌관계를 회피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 전문가적 신뢰에 흠결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는 이익의 충돌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연구자에게 새로운 관계형성이나 계약체결이 있을 때, 연구자의 기본자세에 위배되지 않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제도적으로 도입되지 않았다. 우리 연구계에서 만연된 온정주의와 봐주기를 치료하는 방법은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빨리빨리, 대충대충 처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스탠다드는 꼼꼼히 빈틈없기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연구하는 체질도 바꾸어야 한다. 연구자 간의 협력을 확대하고 양적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가는 과정에 연구윤리는 반드시 갖추어야할 덕목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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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 글은 저자가 2012년도 한국기상학회지에 기고한 내용을 더 수정, 추가한 것임을 밝혀 둡니다.

2) HEW(Departmen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 미국 건강교육복지성으로서 1979 교육성(ED) 분리되고

 HHS(Department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개명함

3) National Committee for the Protection of Human Subjects of Biomedical and Behavioral Research


 

출처: 학술규범과 연구윤리, 한국기상학회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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