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SN: 1229-0750
대동철학 (2011)
pp.13~191
조선유학사와 식민주의
한국학계의 가장 고질적인 병폐는 식민성(植民性: colonialness)과 연관된다. 식민성은 비단 일제시기의 학문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식민성은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남의 것을 베끼는 데 익숙한 모든 것’을 말한다. 남의 것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나의 것인 양 생각하는, 가장 몽상적인 학문태도가 바로 식민주의(colonialism)인 것이다. 동양학을 하는 사람은 이런 식민성과 무관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동양학을 하는 사람들은 자칫 ‘우리 것’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실제로는 중국학을 하면서도 동양학이라는 이름 때문에 우리 것을 한다고 오해할 때 그 식민주의의 자기함몰성은 더욱 심각하다. ‘오리엔탈 오리엔탈리즘’ 또는 ‘바나나주의’(bananaism)는 동양의 동양폄하주의를 가리킨다. 일본은 일찍부터 아시아를 떠나 유럽으로 가고자 했다. 이른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주장은 일본근대화의 모토였다. 선진 유럽의 문화와 제도로 동양제국을 지배하여 계도하자. 이러한 일본의 태도는 동양의 동양주의가 서양의 그것보다 좀 더 고질(痼疾)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식민주의는 아래와 같이 네 가지로 드러난다. 첫째, 미개조선의 폭정과 궁핍으로부터 일본제국에로의 귀화. 둘째, 중국의 후진식민에서 일본의 선진식민으로의 개화. 셋째, 서구의 식민정책에 대항하는 황국신민화. 넷째, 세계제국 속에서 동아시아인으로서의 자격화. 첫째는 무정부 상황에서 인간의 조건-‘인권’이 문제되고, 둘째는 기존질서에서 새로운 질서에로의 변화-‘진보’의 목적이 문제가 되고, 셋째는 최선(最善)을 대신하는 차선(次善)의 악(惡)-‘선한 악’ 또는 ‘필요악’이라는 관념이 문제가 되며, 넷째는 서구화에 대항하는 동아시아 주류의 공동체-‘주체’와 ‘자각’이라는 개념이 문제가 된다. 이 모두 계몽(啓蒙: enlightenment)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등장한 문제들은 오늘도 여전히 철학적 주제로 유효하다. 조선유학연구의 시발은 일본인 학자 타카하시 토오루(高橋亨: 1878-1967)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역시 여러 종류의 식민주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많은 명분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위한 조선유학의 비하를 넘어서지 못했다. 문제는 우리의 초창기 유학연구자들이 모두 그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고, 그들로부터 교육받은 사람들이 현재의 한국유학전문가라는 점이다. 생물학적 세대로 말하자면, 타카하시와 그를 논박한 장지연(張志淵: 1864-1921)이 1세대, 그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2세대, 2세대를 스승으로 삼은 사람들이 3세대가 된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타카하시가 제시한 주리(主理)와 주기(主氣)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문적으로는 모두 제1세대에 속한다. 학문적 2세대의 모색을 위해서 타카하시를 다시 바라보아야 한다. 이글은 타카하시에 대한 여러 의견을 정리하고 비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