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SN: 1229-0750
대동철학 (2009)
pp.19~38
『열하일기』를 통해 본 박지원 사상의 근대성과 번역의 근대성 문제
이 글의 목적은 18세기 조선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던져주는 연암 박지원의 문학에 나타난 근대성을 살펴보는 데 있다. 또 당시 문인 사대부 뿐만 아니라 중인이나 부녀자 계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읽혔던 『열하일기』의 번역을 통해 번역과 근대성의 문제를 아울러 살펴보고자 한다. 박지원의 글에는 중세적 가치와 근대성이 혼효되어 있다. 예컨대 그가 명나라와 조선의 관계를 군신관계로 표현한 것은 중세적이다. 그러나 개인의 소소한 욕망을 긍정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어린 아이에게라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 점에서는 근대적이다. 요컨대 박지원의 글은 거대담론의 영역에서는 여전히 중세인으로서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소소한 영역에서 중세적 가치가 깨져 나가고 근대성을 지향하고 있다. 박지원의 작품 『열하일기』는 근대이전인 18세기말에 이미 한글로 번역되었지만 근대 이후의 번역물은 일제강점기부터 번역에 착수하여 1948년에 출판한 ‘김성칠 역 『열하일기』’, 1955년 북녘에서 간행한 ‘리상호 역 『열하일기』, 1966년에 간행한 ‘이가원 역 『열하일기』’, 그리고 2009년에 간행한 ‘김혈조 역『열하일기』’가 있다. 『열하일기』의 작자, 박지원의 글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18세기 조선의 지식인이라는 특수성까지 어우러져 번역자가 고민해야 할 부분이 더 많다.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상의 번역자들이 『열하일기』를 번역하여 박지원 문학의 가치를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전해준 것은 그 자체가 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중에서 가장 빛나는 번역을 들라 하면 자주와 주체의 이름으로 번역했다고 평가할 만한 리상호 역 『열하일기』를 꼽을 것이다. 리상호 역 『열하일기』는 이후 50년이 지난 뒤에 세상에 나온 최신의 『열하일기』 번역서에 비추어보더라도 뛰어난 번역일뿐더러 명실상부한 최초의 열하일기 완역이라는 점에서 『열하일기』 번역사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