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SN: 1229-0750
대동철학 (2009)
pp.25~46
『노자』 ‘小國寡民’의 정치철학적 지향
이 글은 『노자』 ‘소국과민’장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여 노자의 정치철학적 입장과 그가 지향하는 세상의 모습과 의미에 대해 연구한 것이다. 노자의 정치사상은 자신의 시대와 현실에 대한 깊은 통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소국과민’장은 국가와 정치에 대한 노자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노자는 정치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국가와 정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치철학의 근본문제는 국가의 조직, 성격, 기능, 작용 등에 관한 문제들에 논리적으로 앞서는 것으로 ‘과연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노자의 관심은 국가의 규모, 제도, 규범, 문화가 아니라 실재하는 국가의 구체적 정치현실 속에 존재하는 개인과 그의 삶에 있다. 인간은 한 집단의 일원으로 태어나지만, 집단·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으로 존재하며 개인으로 살아갈 뿐이다. 정치적 집단주의의 산물인 국가 또는 국가권력[권력자]은 규범과 제도의 제정과 운영의 원리인 보편적 규범주의와 도구적 합리성을 강화하는 성향을 그 본성으로 가지며, 이는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개인에게 일정한 규제와 제한을 가하는 억압구조를 필연적으로 산출하게 된다는 것이 노자의 생각이다. 노자는 국가와 개인 사이의 억압구조가 약화되어 해소될 때 개인의 자유가 증대하게 되어 마침내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가 고안한 장치가 ‘소국과민’의 논리다. 이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현실의 정치가 아닌 정치의 이상에 대한 견해이며, 궁극적으로는 정치를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스림’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을 정치의 대상으로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시선은 독립적으로 자재하는 개인의 자연스러운 본성을 왜곡하게 된다는 것이다. ‘소국과민’은 이러한 노자의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제시된 하나의 상징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거나 실현가능한 세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노자는 원시에의 향수에 빠진 보수적 복고주의자가 아니다. 개인의 삶을 왜곡·억압하는 당대 정치현실의 모순을 역설적으로 이야기함으로써 개인과 사회가 지니는 정치적 지향성의 문제점을 환기시키고,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의 삶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소국과민’은 실재하는 실현가능한 사회가 아니며, 더욱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정치적’ 이상향도 아니다. 현실정치의 모순에 대한 부정·보완으로 제시되는 정치적 이상향은 또 다른 이념적 지향을 초래하고, 결국 새로운 문제를 생산하며 개인의 자연스러운 삶을 방해하게 된다. 이는 노자의 생각이 아니다. ‘소국과민’은 역설적 상징이다. 노자는 이 유토피아적 상징을 통해, 이상세계의 실현을 주장하기 보다는, 역설적으로 당대 정치현실에 내재한 모순의 심각성을 폭로하고 인식의 전환을 통해 ‘집단’에 매몰된 ‘개인’을 살려내는 현실 변혁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하는 전망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