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SN: 1229-0750
대동철학 (2008)
pp.43~64
龍西 尹元擧의 徵士的 삶과 易學이해
이 글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尹烇의 長子인 尹元擧(1601-1672)의 徵士的 삶과 易學理解에 대한 硏究이다. 그는 평생을 徵士的 삶으로 一貫한 湖西지역 儒學者이며, 易學者였다. 50대부터 여러 차례 벼슬을 받았으나, 번번이 辭讓하고, 단 한 번도 官職에 나가지 않았다. 그 대신 成牛溪의 아들 成文濬을 輔仁堂으로 초빙하여 직접 가르침을 받는가 하면, 書信往來를 통해서는 周易과 理氣에 관한 간접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또한 隣近에 살고 있던 愼獨齋 金集과 함께 師道의 傳授와 繼承에 일조하는 한편, 趙翼을 經學에 造詣가 깊다 하여 特別히 尊慕하는 등 徵士的 삶으로 일관했다. 이에 대해 그의 종제인 尹拯은 “先生의 氣質은 맑고 和通했으며, 마음은 疏脫했고, 뜻은 『春秋』에 두었으며, 道는 伏羲易에 두었고, 一簞食·一瓢飮도 걱정하지 않았고, 後學 및 從姪子弟들을 敎育하는 것을 樂으로 삼아 그의 遺風은 百歲동안 변함없이 본받고 따를 만하다.”고 소개했다. 그의 徵士的 삶과 역학이해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두 종류뿐이다. 본 논문에 인용된 역학관련 3가지 언급과 윤선거가 윤원거의 역학을 ‘후천설’이라고 소개한 내용이다. 당시 兪棨와 尹宣擧가 선후천개념의 문제에 대해 상호 서신왕래하는 가운데 윤선거는 ‘후천’에 관한 설이 윤원거의 이론이라고 소개했을 뿐, 그 설의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아 그의 역학에 대한 구체적 이해를 살피기가 어렵다. 물론 유계와 윤선거, 윤원거와 윤선거, 그리고 윤원거와 유계 등 사이에 행해진 역학관련 자료가 발견된다면 윤원거의 역학이해에 대한 전말을 파악할 수 있다. 이 같은 자료의 부족과 선행연구의 부재로 인하여 본고를 고찰함에 있어 필연적 한계가 노정되나, 기 발표한 두 편의 졸고를 통해서 제기된 문제를 중심으로 윤원거의 삶과 역학이해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 같은 고찰은 당시 충청오현들과의 학문교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노종오방파 후손들(윤순거·윤선거·윤문거·윤증·윤지 등)사이의 학문수수관계, 즉 魯宗五房派 家學의 一段까지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그동안 한국철학계의 주요 흐름에 비추어 볼 때, 연구 내용과 방법 면에서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를 택한 것은 평범한 삶을 살다간 재야 학자요, 국가와 사회에 크게 기여한 바가 없다하더라도 그의 삶과 학문은 정당한 평가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