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SN: 1229-0750
대동철학 (2007)
pp.21~47
『순언』과 ‘양생’ ― 그 정치철학적 양생론의 가능성에 대한 모색
이 글은 율곡의 ꡔ노자ꡕ 주석서인 ꡔ순언ꡕ을 중심으로 ‘양생’에 대한 내용과 입장을 살펴보는데 목표가 있다. 율곡이 보는 ‘양생’의 의미는 ‘생명을 잘 기르는 것’이라고 하는 매우 기본적인 개념정의에 충실하다. 그러나 ‘양생’이 도교 수련적 맥락을 갖는, 일종의 건강을 증진하는 일이라든가 불노장생의 신선술, 또는 위생을 증진하는 일 등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것이라면 이러한 측면은 오히려 율곡에게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율곡은 ‘양생’을 도교적 맥락에서 접근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 지반인 유가 성리학적 입장에서 접근함으로써 자신의 관점에서 새롭게 풀이한다. 율곡에게서 ‘양생’은 일련의 도교적 사유의 틀을 탈각하고 유가의 ‘수양론’적 범주로 설명된다. ‘양생론’이 유가 성리학적 ‘수양론’의 맥락에서 논의된다는 것은 그것이 ‘도덕함양’의 수양론으로 전변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율곡이 생각하는 참된 ‘양생’이란 ‘진실한 덕을 기르는 일’이나 또는 ‘지극한 덕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그리고 양생의 범주는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고 기르는 차원으로부터 ‘하늘을 섬기는 일’에까지 미친다. 그 범주가 인간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우주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양생’은 일종의 소통력이다. 이러한 소통력을 정치현실에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 율곡의 생각이다. 이에 율곡은 ‘양생’의 맥락을 정치철학적 원리로 수용하면서 특히 군왕의 마음가짐과 통치의 이념으로 제시한다. 군주의 양생은 ‘무위정치’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생론’적 접근은 조선조 유학사에 있어서 매우 특기할 만한 의의가 있다. 대부분 ‘양생론’의 범주를 도외시하고 배척하던 시대적 상황에서조차 율곡은 ‘양생론’의 범주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이를 하나의 철학적 담론의 영역 안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하였던 것이다. 율곡은 조선 성리학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정치철학적 양생론’의 범주를 최초로 제시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잘못될 수 있는 정치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예방적 효과가 있다. 이러한 전통은 율곡 사후에 ꡔ노자ꡕ를 주석했던 박세당, 서명응, 이충익, 홍석주 등에 전승되어 하나의 전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