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SSN: 1229-0750
대동철학 (2007)
pp.207~226
Philosophical Discourse and Pictorial Image ― Louis Althusser and Cremonini, Painter of the Abstract
본 연구는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추적하는 일련의 작업 중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 루이 알튀세의 철학적 담론과 이탈리아 예술가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의 그림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본 연구의 큰 전제는 이렇다.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사이의 긴밀한 관계는 해당 철학자의 개인적이고도 우연한 예술애호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철학적 담론이 깔고 있는 구조적인 이론적 전제로부터 비롯되거나 요구된다. 따라서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사이의 복잡다단하고도 중층결정된 관계는 단순한 연대기적 서술이나 일대일 대응식 독서를 통해서는 해명될 수 없으며, 다시 일종의 철학적 독서를 요청한다. 사실 플라톤 이래 철학자들은 예술에 대해 나름의 철학적 테제를 제시하거나, 아니면 철학의 층위에서 나름의 예술지식을 부여함으로써 예술이론의 발전에 진보적이거나 퇴행적인 기능을 수행해왔다. 전체적으로 봐서, 철학은 자신을 심층심급으로 간주해 예술에게 철학적 진리가 출현하는 장소, 곧 표면심급의 지위를 부여하거나, 아니면 철학 스스로 나름의 예술지식으로 무장해 이를 예술에게 강요한다. 전자의 개입방식에 의해 철학이 자기 자신을 정당화함과 동시에 예술은 자율적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면, 후자의 개입방식으로부터는 예술과 관련된 여러 가지 범주들(이를테면 유기적 작품, 천재로서의 예술가, 경건하고 몰입적인 수용태도 등)이 출현한다. 본 연구는 철학과 이미지 사이의 일반적 관계를 이렇게 두 가지 양상으로 구분한 후, 알튀세의 철학적 담론과 크레모니니의 그림이미지 사이의 관계는 과연 어떠한지를 따져본다. 이를 위해, 본 논문은 먼저 여러 가지 방향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의 정당성 문제를 따져보고, 현대미술을 이러한 위기상황에 처하게 만든 이데올로기적 예술독법들을 분석하였으며, 일반적으로 예술과 이데올로기 간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이데올로기이론사에서 되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놓아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에 따라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좁게는 그의 철학체계 내에서 이를테면 하나의 간과된 이론적 중심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넓게는 예술에 대한 철학적 담론의 층위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고도 새로운 이론적 돌파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미학계건 미술사학계건 철저하게 외면되어왔던 알튀세의 예술이론을 구성해보고, 이를 그가 직접 평하기도 했던 이탈리아 예술가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의 그림에다 적용하였다. 알튀세에 따르면, 철학이란 곧 현재의 정세에 테제의 제시를 통해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1960년대 내내 프랑스 공산당에 개입했듯이, 우연히 들러본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서의 크레모니니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잘못된 반응을 기화로 현대미술세계에 개입한다. 그렇게 해서 쓰인 소략한 에세이 “크레모니니, 추상의 화가”는 “앙드레 다스프레에게 보낸 편지” 및 “피콜로: 베르톨라찌와 브레히트(한 유물론적 연극에 대한 노트)”와 함께 유물론적 예술이론의 성립을 위한 기초가 되고 있다. 196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전시된 크레모니니의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된 알튀세는 그의 작품을 표현주의 작품으로 경멸적으로 부르는 일반 관객들이나 전문 비평가들의 반응에 접하고는 그의 작품에 대한 유물론적-징후적 독해에 임하게 된다. 이때는 마침 알튀세가 리얼리즘(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사회적 리얼리즘 모두)에 대한 혐오를 키우고 있던 때로, 이를 기화로 작성된 “크레모니니, 추상의 화가”는 취미의 전문가(전문비평가)뿐만 아니라 이른바 정통 공산주의 비평가 둘 다를 겨냥한 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알튀세는 크레모니니를 비단 표현주의라고 하는 딱지로부터, 아울러 일반적인 의미의 추상화가라고 하는 지위로부터 구원할 뿐만 아니라 불가능성을 그리는 추상의 화가로 살려내고 있다. 맑스가 역사유물론의 영역에서 인간들 간의 관계를 분석해내었듯이, 크레모니니 역시 예술의 영역에서 인간들 간의 추상적인 관계를 그려냈으며, 맑스가 유물론적 역사관에 대해 성취한 바로 그 인식론적 단절을 크레모니니의 그림이 화화에 대해 성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튀세의 이른바 예술이론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아니, 그의 이론 전체가 이제는 망각의 저주 하에 처해있으며, 인용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비판하기 위해 인용되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본 연구는 알튀세의 이론이 “예술작품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하는 물음에 대단히 중요한 이론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며, 예술연구를 위한 만족스러운 유물론적 토대를 그려내고자 하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반드시 그의 이론, 그가 제시한 개념들과 문제들을 거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적 담론과 그림이미지 ― 루이 알튀세와 추상의 화가 크레모니니
The paper, one of a series of works to chase the relations between philosophical discourse and pictorial image, aims to critically review the specific relation between Althusser's philosophical discourse and the pictures by the Italian Artist Leonardo Cremonini. The assumption on which this study is based is the following. If there is a certain intimate relation between a philosophical discourse and a pictorial image, it should not be attributed to the personal and accidental love of art expressed by the philosopher in question. The relation is caused or required by the structural and theoretical presuppositions in which his system of philosophy is embedded. And then the paper is looking for the wider context in which Althusser's art theory could be placed, which I think is the problem of legitimacy of contemporary art raising very frequently the "Is it art?" question. This question can be transformed into the question "How to read the contemporary art?" or "How to get a scientific knowledge of art?" At this point, Althusser is expected to offer the possibility to establish one's own discipline's( in my case, philosophy of art's or scientific art theory's) theoretical basis. I'm sure that Althusser's thought opened up and still contains a lot of promising theoretical paths to intervene in so many areas including philosophy of art and art theory as well. After reviewing the general relations between art and ideology and their consequences for probing into the specificity of art, the paper attempts to analyze the ideological readings of art and show that Althusser offers the materialist-symptomatic reading as an alternative. In fact, it could be said that the whole works done by Althusser could be summed up in the phrase "the labour of reading". Finally, the study looks into the paintings by Leonardo Cremonini, the only ones mentioned by Althusser himself. Althusser maintains that Cremonini does not paint objects or even human subjects and that the fundamental object of his work is the structure of relations by which what appear to us in humanist ideology as subjects and objects are really linked. That's why Althusser calls Cremonini a painter of the abstract, not an abstract painter. In historical materialism, the relations between people and objects are abstract. That is, they are not immediately given to human perception, but must be found by scientific analysis. For Althusser, it is precisely these relations by which our lives are determined that constitute the object of Cremonini's paintings. In conclusion, Cremonini's paintings, Althusser argues, show us visually what Marx's analysis of Capitalist society tells us scientifically.